'왜일까?' 에 대한 생각

2025. 5. 25. 06:49미국박사유학

이것은 무엇을 하고 싶을때 '왜 하고 싶을까?' 에 대한 생각을 적은 글이다. 나는 이십대부터 쭉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무엇인가가 하고 싶을때 왜 그게 하고 싶은지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지 궁금했다. 무엇인가가 사고 싶을때 왜 그 물건이 사고 싶은지, 무엇인가가 끌리지 않을때 왜 싫은 지. 이 생각들의 중요한 점은 그 좋고 싫은 이유에 대해 내가 명확한 이유를 쉬이 설명할 수 없을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곤 왜일까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혼자 자주 한다.

 

특히 나는 납득을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때, 그냥 그 한 사람만의 행동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이 비슷한 행동/선택을 할때는 더욱이 왜 일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예를 들면, 왜 저 여자는 저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좋아할까. 내가 보기엔 너무 자명하게 별로인데, 그게 그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비슷한 나이대(20대 초반) 여자들이 그런 것을 보며 궁금했다. 내가 모르느 것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의미 없는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내가 모르는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그걸 넘어서는 너무 별로인 점이 보일때는 이 질문이 의미가 있겠다. (여자라고 명시적으로 표현한 것은 내가 남자이고 더욱이 알 수 없는 이성의 성이 여자이기 때문이다. 아마 동일한 현상이 남자에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유투브 채널은 보면 내 생각에는 유명하지 않아야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개인적인 선호에서 벗어나서 보기 싫은 채널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본질적으로 그 사람의 언행이 싫은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마선호 라는 운동하는 것으로 영상을 찍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느끼기에 불편한 한국의 묻지마 위아래 문화를 대표하는 모습을 과장까지 해가며 하는 언행들이 너무 보기 언짢다. 그리고 그 언짢은 사람이 유명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보고 나처럼 언짢음을 느끼지 않는 다는 것이고 좋고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나는 그럼 문화를 가진 곳이 나에게 맞지 않은 옷같은 느낌을 아주 어릴때부터 느껴왔다. 불편한 한국.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려면 영상을 다시보고 분석을 해야겠다.) 뭔지 모르게 중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진들의 언행과 비슷하고 자기가 느끼기에 위에 사람이라고 하면 끝없이 굽신거리는 몸짓들 (예를 들면 김종국에게), 그리고 그에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고 하기는 커녕 자연스럽게 받는 김종국의 모습. 자기보다 아래인 사람에게는 완전히 다른 태도의 행동들. 보면 좀 강한 표현이지만 억겨움이 든다. 이에 대해 영상이니까 그렇게 연출이지 실제로 누가 그래 라고 말한 거라면 정말이지 눈을 뜨고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저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연출로 나온 결과라고 한다면 예를 들어 미국 운동 영상에 연출이라고 저런 태도로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영상이 있는지 봐라. 이건 분명 문화에 결과물이다. 그럼 어떤 컨텐츠 어떤 영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줄지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곳은 이런 것들을 필터링을 할까. 전혀 아니다. 라디오 스타에도 나오는 것을 보면 유명한 프로그램에 그 업계의 유능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팀이 운영을 할텐데 마선호와 같은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대중이 그 영상을 소비를 하고 더욱이 최악의 상황들이 연쇄적으로 강화된다. 이게 사람들은 이를 보고 아 이게 보통이라고 받아 들이고 저것들을 이 문화가 좋아한다는 것을 학습하고 그렇기에 사람들(특히나 어린 학생들?)은 더욱이 그렇게 행동을 한다. 이런 영상을 보게 되면 위와 같은 생각 든다. 그리곤 이 글의 본래의 질문이 머리에 떠오른다. '왜 그러지? 왜 좋아하지 이걸? 불편하지 않나? 왜 나는 이게 불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지? 느끼는데 말을 안하는 건가? 그러면 왜 유명하지?'

 

이 종류의 생각들은 단순 사람에 대한 건 아니다. 랜덤한 생각에 대해서도 같은 궁금증이 든다. 예를 들어 나는 왜인지 전력질주(100미터 달리기 같이) 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곤 왜 일까 궁금하다. 왜 전력질주를 하고 싶지. 분명 하고 싶은데. 나는 가끔 그렇게 뛰는 꿈을 꾼다. 어렸을때는 전력질주를 하며 운동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점점 그런 일이 줄어들었다. 

 

블로그 글을 쓰고 싶다. 왜일까. 내 블로그 글들은 거의 아무도 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쓰고 싶다. 이 글이 사회적으로 어떤 유익함을 주진 않을 확률이 높지만 쓰고 싶다. 왜일까. 인간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본질적으로 내재되 있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고 싶은게 아닐까. 혹은 지금은 이 글을 아무도 읽지 않겠지만 미래에 공감을 할 누군가가 읽는 다는 상상을 하며 쓰는 게 아닐까!? 

 

요즘 들어 사진이 찍고 싶다는 생각 든다. 사진을 왜 찍고 싶을까? 사진을 찍는 다는 건 무엇을 의미 할까? 왜 찍어야하지? 기록하고 위해?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고 기억이라는 것은 시각화 할 수 없으니까? 왜 기록을 하고 싶지? 보고 회상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다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내'가 관여되지 않은 사진까지 찍고 싶지? 어느 유명한 음식점을 예약을 해서 갔다. 백이면 백 사람들은 사진을 여러 각도로 찍을 것이다. 왜지? 그 사진이 무슨 의미를 가지지? 내가 찍은 그 음식의 사진과 다른 사람이 동일한 음식점에서 동일한 음식을 더 좋은 카메라와 구도로 찍을텐데 내가 아이폰으로 지금 찍는 사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그러면 사진을 찍지 않아야하지 않을까? 풍경 사진을 찍는 의미는 무엇일까? 에펠탑 사진을 훨씬 더 멋지게 찍는 사진 작가들이 있는데 내가 여행왔다고 에펠탑 사진을 수십장을 찍는건 무슨 의미가 있나? 그 에펠탑 사진을 다시 들춰보긴 할것인가? 누군가는 쉬이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나의 에펠탑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이기에 다르다'. 하지만 정말 무엇이 다른가? 제 3자가 와서 그 사진을 볼때 내가 찍은 에펠탑과 다른 사람이 찍은 에펠탑 사진을 구분 할 수 있을까?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 혹은 '내가 아는 사람'이 들어간 사진이 아니면 의미가 크게 없다고 생각을 했다. 혹은 그 풍경에 에펠탑 같이 인터넷에 수억만장이 존재 하는게 아니라 정말 접근하기 어려운 곳의 풍경 사진, 예를 들어 오지 혹은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은 곳. 예를 들어 나는 2012년 혼자 인도 여행을 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한 곳들을 이상한 방식으로 많이 갔다. 인도인 친구들도 말하면 '너는 진짜....' 라고 말하는 곳들. 그 곳들은 사진을 찍는 것 만으로 그 사진의 희귀성이 있기에 나라는 사람이 그 사진에 들어가지 않아도 비교적 나만이 찍을 수 있는 사진이 되기에 가치가 있겠다. 그러면 위의 두가지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진은 의미가 없을까? 생각을 해보면 해볼 수록 의미가 있는거 같다. 사진의 의미는 결과만에서 오는게 아니라는게 나의 결론이다. 그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있다. 평생 다시 그 사진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 사진을 보지 않더라도,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게 결론이다.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찍을 수록 그 행위는 더 큰 의미를 인생에 주게 된다. 그 의미는 사진을 찍으며 세상을 더 디테일하게 관찰하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이 본인의 사람에 더 현재하게 되는 효과가 있는거 같다. 내가 여기에 있고 내가 이런 것들을 보고 사는 구나. 나의 주변에는 이런 것들이 있구나. 그리고 결과적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그러기에 사진을 찍는 것은 사진의 결과물과 별개로 그 행위 자체로 의미가 있다. (위의 생각은 좋은 카메라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왜 좋은 카메라를 사고 싶을까에서 시작된 생각들이다.)

 

궁극적으로 왜 이런 생각들을 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있긴 할까? 에너지 낭비 시간 낭비를 하는 게 아닐까? 차라리 그 생각을 할 시간에 일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다못해 잠을 자는게 더 인생에 더 유익하지 않을까? 결론은 다 필요한 생각들이고 하물며 이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것 조차 (매우 피곤한 행위지만) 필요하다. 이러한 고찰이 없으면 . 거꾸로 이러한 고찰을 할수록 그 사람의 언행은 그 사람이 스스로 납득할 수도 있고 인정할 수 있는 자신이 진정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모습과 자신을 일치 시킬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과 자신의 언행을 일치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일치하는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덜 허무한 인생을 살고 더 인간으로서 인간적인 사람을 살 수 있다.  이게 나의 논지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생각은 필요하고 인간으로서 본인이 본인이 되기 위해 해야하는 생각들이다. 

 

사진 자체로 예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사진들

 

구도도 이상하고 색감도 안예쁘고 사진의 구성요소들도 미적으로 예쁘지 않지만 의미 있는 사진들

 

나만이 찍을 수 있는 '나'가 들어간 사진들

 

 

모든 사진은 의미가 있었다.

 

 

이제 진짜 일 해야겠다....

 

--- <추가 내용들> ---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존재는 알고 있었고 어렴풋이 의미있게 '맞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는 몇 안되는 철학자 중에 한명이었다. (그의 책을 읽은 적은 없기에 어렴풋이라고 밖에 말을 못하겠다.) 그런데 잘 알지 못하지만 '맞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몇몇 그의 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건 옥스포드 살인 사건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한건 전혀 아니다.) 영화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해 이렇게 의역된 script가 사용되었다. "Therefore, philosophy is dead". 고등학생 시절 이 장면을 수십번 돌려보고 공감하고 마음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류의 생각을 한 철학자가 있었고 그를 위대한 철학자라고 사람들이 칭하는 구나! 나의 생각이 헛된 생각이 아니구나!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렇기에 이런 철학적 생각들이 의미가 없는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그렇기에 더욱이 우리는 자신의 철학을 만들기 위해 이런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현재 이 paragraph는 논리가 엉성해 말이 안되게 보인다. 전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하면 너무 길어지고 귀찮기도 하고, 그에 대한 나의 이해도 아주 깊진 않기 때문에 여기서 멈춘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더 알면 알수록 그에 대해 마음이 쓰인다. 아주 외로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이러한 생각들은 보통 쓸데 없다거나 재미없고 언짢은 대화라고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직업적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확률에 높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옳은 방향의 삶을 살았더라도, 외로움과 싸우며 그 옳음을 추구하려고 애를 많이 쓰지 않았을까. 그에게 공감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았을텐데 쉽지 않았겠구나.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이지만 내가 옆에 있었다면 공감과 응원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reference(the oxford murders video clip):  https://www.youtube.com/watch?v=z5T31UjmPME